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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과 부정수소외래(不定愁訴外來),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오랜 떡밥 소주안주 - 세상사

의사협 '세계유산 동의보감' 딴죽


0.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적 유산 중 하나인 <동의보감>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기뻐할만한 일이고, 또한 조선시대의 '의서'가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동의보감>외의 다른 의서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몇 가지 있을만도 한데). 의사협회는 아니나다를까 여기에 축하인사를 보내면서도 은근히 딴지를 걸어왔다. 이걸 계기로 한의학이 세를 펼치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살짝 뒤집어 생각해보면, <동의보감>은 의서다. 의서를 '문화유산'으로서 지정했다는 것은 한의학을 과학의 카테고리가 아닌, 문화의 카테고리로서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추론을 해볼수도 있다. 사실상 의학계에서 한의학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의학은 의학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있는 한정호 의사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예다.

내과의사 한정호의 의료와 사회 : 심근경색이란 있지도 않은 병을 의사들이 돈벌려고 만들었다?

진화생물학에 대해서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쓰시는 블로거인 漁夫님께서도 한의학에 대한 글을 몇 가지 올리셨다.
의학과 한의학에 대한 개인의견
의학과 한의학에 대한 개인의견(2) - 漁夫님

그리고 이에 자극많은 많은 블로거들이 또 이에대한 엄청난 양의 포스팅을 하였고, 이에 대해서는 漁夫님이 정리해두신 트랙백을 넘기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의학-한의학 논의 ; posting thread 정리 - 漁夫님

...이정도만 해도 이게 작은 떡밥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지.
1. 근대서양의학의 성과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통계적으로 성과를 증명한 최초의 의학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서양의학의 발달은 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임으로써 인류의 증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인류가 근대에 이르러 엄청난 인구증가율을 보여준 까닭에는 근대서양의학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현재의 통계적 연구를 통해서 판단했을때 근대서양의학의 성과가 분명 사망률을 크게 줄였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를 계기로 기존의 의학을 근대서양의학이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거대한 전기를 맞게되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학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 중요했다.

  고대의 의학은 사실 의학이라기보다 종교에 가까웠다. 인간의 몸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파악할 방법이 없던 시기에 병과 죽음과 삶은 결국 신에게 달린 일이었다. 질병을 다스리는 신이 각 문화에 중요하게 등장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이집트의 네페르템, 힌두교의 시바, 고대 중국의 신농씨) 이 당시의 질병은 결국 신의 역사.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나 다를바 없는 것이었고 그 자체가 중요한 현상이었다. 이것은 지금 과학으로 파악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에 공통된 인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교 형태의 파악은 그 사태의 원인보다는 현상 그 자체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원인은 어차피 신의 역사. 중요한 것은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그 해결책. 물론 해결책은 신에게 싹싹 비는 것이지. 마치 고대 델로스 섬에서 사람들이 아폴로 신에게 싹싹 빌었듯이.

2. 의학이 본격적인 과학으로서 자리잡은 것은 18~19세기의 일이다. 물론 의학의 시초로 꼽는 것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이지만 12~13세기 흑사병이 돌 때까지 서양 의학의 해결책은 흔히 현대 서양의학자들이 전통의학자를 보면서 말하는 '미신'에 의지하는 경향이 컸다. 이른바 민간요법. 이런 방법의 특징은 바로 대증요법과 전승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증상에 맞도록 먹여보고 그게 효과가 있으면 계속 전승되어 내려간다는 것이지. 열이 나면 차가운 음식(또는 약)을 먹인다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병의 원인을 보기보다 병이 나타내는 현상을 보는 것. 이것이 '병의 원인'을 바라보고 이를 제거함으로써 병을 치료한다는 서양의학의 현재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와서 의학은 급변했다. 물리학과 화학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학문이 출현하면서, 자연현상에 원인이 있듯이 병에 '원인'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급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파스퇴르였다. '세균'이라는, 가장 가시적인 원인을 발견해낸 것이다.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세균을 몸 밖으로 몰아내거나 세균에 감염된 부분을 몸과 분리시킴으로써 병을 나을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그 세균을 분리해내는 방법으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근대 계몽기 조선 사람들에게, 몸에 칼을 댄다는 무식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서양의학의 신뢰성을 높여준 원인 중 하나에는 칼을 7군데나 맞아 생명이 위태로웠던 권력자 민영익에게 외과수술을 시행하여 그가 목숨을 건졌다는 '앨런 신화'가 있었다. 이와 같이 서양의 근대의학은 그 통계적-실질적 성과를 통해서 권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3. 그러나 근대 의학의 신화에 대해서는 조금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고미숙은 근대성과 전근대성, 탈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나비와 전사>라는 저서에서 '임상의학의 신화는 근대 해부병리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해부병리학은 위에서 트랙백한 漁夫님이나 한정호 의사가, 그리고 한의학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는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는 '근거 부족'의 논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위에 링크한 한정호 의사의 글에서 심근 경색에 대해 해부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역사적 근거가 조금 부족한 사람들 몇몇은 근대 의학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분해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근대 의학의 시작을 해부학을 통한 '병소'의 정확한 파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이를 부정한다. 해부학이 근대 의학의 전유물이 된 것은 근대 의학의 발전에서도 가장 마지막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병에 (합리적) 원인이 있다 -> '정상적'인 몸에 '비정상적인 무언가(여기에선 세균)'가 침투한 것이 원인이다 -> 그걸 찾아내려면 갈라봐야 한다"가 근대 의학의 발전 순서이다. 외과수술? 오히려 칼을 대려면 본인은 물론이고 보호자의 동의를 다 받고 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하는 현대보다, 군주가 모든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던 전근대시대에 훨씬 유행했다. 화타 봐라 화타. 팔에 고름생기면 아무런 의심없이 팔을 잘라내던 시절이 있었다. 해부학? 만화 <갓핸드 테루>에 보면 초보 의사인 테루가 X-Ray 사진을 정확하게 읽는 방법을 배우는 부분이 나온다. "정상인의 신체를 머리속에 넣어두어야 병소를 구분해낼 수 있다"고 스승인 기타미는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람 갈라보고 어디가 위고 어디가 간인지는 알았을까? 위암 걸린 사람 해부하면 위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나? 한정호 의사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심장이 막히면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그 전에 심장 막힌 사람 천명은 갈라봐야 그것이 심근경색이라는 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부학이 왕도가 아니라, 서양근대의학 자체도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병소를 구별해내는 방법을 배웠을 뿐이다. 수많은 '임상'의 예!

실험을 통해서 병소를 구분해내는 임상의학은 위생 담론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보이는 것'이 곧 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균'이라는 보이는 원인을 밝혀내고, 심장 혈관에 끼인 '불순물'을 깨끗하게 제거해냄으로써, 원인을 없앰으로써 병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병소를 생산해내는 각종 나쁜 것들과 자신의 신체를 분리 / 단절해내면 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길거리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똥을 화장실이라는 분리된 공간에 집어넣고, 더러운 미세먼지와 그 안에 섞인 세균을 멀리 하기 위해 몸을 매일 씻는다. 하루에 세 번씩 샤워를 하는 사람도 요즘은 수두룩하다더라.(사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필자는 불결하기 그지 없는 인간이지만 -_-) 위생담론의 핵심은 단절과 분리이다. '정상적인' 또는 '건강한' 신체를 상정하고, 이러한 건강한 신체로부터 '나아쁜' 것들을 하나하나 없애나가는 것이다. 분리를 통해 '비정상적인' 질병의 상태를 '정상적인' 건강한 상태로 만든다. 이것이 근대 의학이 가진 핵심적 파토스다. 고미숙은 이것을 권력의 문제로 읽는다. 권력이 병리학을 통해서 신체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신종플루에 주사를 맞히고, 매년마다 인플루엔자 접종을 실시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소독차가 지나가고. 이것은 결국 누가 '정상적인 신체'를 상정하느냐의 문제로 환원된다. 대체 건강하고 행복한, '정상적인 신체'란 무엇인가? 병균이 없는 몸이 정상적인 신체라고, 매일마다 샤워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위생행위라고 누가 말했는가? 근대의학의 궁극적인 성공은 그 '신체를 지배하는 권력'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병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있다. 누가 그것을 규정했는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채, 우리는 매일 씻고, 정기검진을 받고, 의사가 말하는 병에 대해서 덜덜 떤다. 공포와 안도감이 병원에서 교차한다. "죄송하지만...늦었습니다." 라던가, "치명적인 수준으로 전개되었습니다"라는 등의 대사는 이미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레토릭이 되었다.

4. 따라서, 병이고 아니고 자체를 의사가 결정하는 근대 의학의 구조에서 한의학이 의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검증되지 않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의학자들의 말은 일견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검증의 틀 자체를 근대 의학과 근대 과학이 규정한 상황에서 이를 한의학에 강요하는 것은 근대 권력의 횡포로 보인다. 침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침이 어느 부분에 압력을 가했을때 이것이 혈액순환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내야 한다. 이것은 이미 근대과학적 틀이다. 그와 전혀 다른 구조로 인간의 신체를 파악하는 한의학의 입장에서는 이는 억울한 일이다. 

실제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어- 신체 수치는 정상인데요. 과민해서 그런거니까 집에서 잘먹고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듣는 것은 병원에서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필자도 그런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필자는 입안에 일명 '입병', 입안이 헐어서 각종 자극에 쉽게 고통받는 것이 수시로 돋는 체질이다.(지금도 입안에 두 개가 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증상은 더욱 심해지는데, 고3때 입안에 무려 14개가 돋아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먹은 적이 있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일명 '악마의 약' 알보칠은 필자의 상비약이었는데, 최근에는 안바른다.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보칠 바르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필자는 이제 아프지도 않다. 그래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이쯤되면 무언가 병소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비인후과에서는 알보칠보다 더 강하다는 초산(알보칠은 초산을 희석한 것이다)을 환부에 발라주는 것으로 처치를 끝냈다. 병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대략 8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필자는 입병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근대 의학의 입장에서는 필자의 입병은 '병이 아니었다.' 데이터를 통해 검증된 병이 아니라면, 병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탐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 - 곧 정신의 문제로 넘어간다. 푸코가 말하는 근대 권력의 정점인 정신병원의 소관이 되는 것이다.

이는 원인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병 - 아토피, 비염, 축농증 등 - 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토피와 같은 병은 한 번 걸리면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이에 대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평생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는 "아 그거 완치는 안되고요. 약 드릴테니까 계속 드세요"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필자는 마찬가지로 축농증을 10년 넘게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병 중에 가장 대표적인 병은 바로 감기다. 감기는 인류가 수천년을 싸워온 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완전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한다. 어 이상하다? 근대 의학이 등장한 것은 고작 200년전인데 어떻게 수천년을 싸웠을까? 한의학에서 고뿔은 물론 중요한 병이지만 한의사들은 이를 잘 고쳐왔다. 우리가 쉽게 '미신'이라고 무시하는 아메리카 인디언 주술사들도 마찬가지다. 감기에 걸린 사람의 '병소'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니 감기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감기는 기본적으로 신체 리듬이 흐트러지면서 생기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토피, 비염, 축농증 등 현대 의학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만성질환들도 마찬가지이다.

5.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양생술(養生術)이다. 위생술(衛生術)이 아니다. 養은 기른다는 뜻. 생명을 가꾸고 기르는 것이 한의학의 근본테제다.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유지하려는 서양 의학의 근본과는 완전히 다른 기반을 지니고 있다. 매일같이 샤워를 함으로써 세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균과 주변 환경과 자신의 신체를 분리하지 않고 전반적인 조화를 추구한다. 아토피는 그본적으로 '몸이 너무 깨끗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면역 체계를 도와줄 세균들을 몸에서 다 떨어내버리니, 약해진 피부가 주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이는 신체의 '경고'다. 지금 몸이 주변 환경과 부조화를 일으키고 있으니 이에 대응하라는 경고인 것이다. 고통은 '나아쁜 것'이 아니다. 고통이야말로 우리의 신체가 위험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일종의 경보체제인 것이다. 

생명을 질병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삶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이러한 경향은 한계에 부딪힌 서양의학에서도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제목에는 진작 달아놓고 이제서야 이야기하게 된 부정수소외래(不定愁訴外來)가 대표적인 예이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이라는 의료 소설로 유명한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병소를 발견할 수 없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치료 및 상담 목적으로 만들어진 외래를 의미한다. 愁자는 근심을 의미하는 글자다.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고통과 근심을 상담을 통해 덜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 부정수소외래를 담당하는 주인공인 다구치 선생은 알콜중독자에게 '스페셜 앰플'로 술을 내미는 스타일의, 근대의학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용납할 수 없는 의사다. '알콜중독'은 근대의학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비정상'이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환자의 삶이라는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다른 관점에서 이것의 다른 모양을 지켜볼 수 있다. 부정수소외래는, 근대의학이 위생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양생술의 기능을 받아들이고자하는 일종의 항복선언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플라시보 효과일 것이다.

6. 병은 삶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와 분리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근대 의학이 상정하는 '건강한 정상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겉으로 건강해보이는 사람도 어떠한 고통을 안고 있는지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필자와 같이 빼빼마르고 200m쯤 뛰면 헉헉거리고 100m를 24초에 주파하는데다가 입안에는 입병을 달고 살고 코에는 항상 콧물이 맺혀있는 '비정상 운동치'도 건강하게 잘 산다. 물론 근대 의학의 힘으로 삶을 얻은 사람이 있다. 이것은 위생과 양생이 일치하는 지점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의학의 힘으로 간신히 숨만 붙은채 연명하고 있는 뇌사자는 과연 양생하고 있다고, 근대 의학에 의해서 행복하게 살아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필자는 근대의학의 성과를 부정할 생각도 없고, 근대의학에 관점에서 한의학이 우습고 비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합리'는 누구의 합리인가? 근대의학은 제 3자 - 곧 진리의 입장에서 내려와, 순수한 근대의학의 입장에서 한의학을 다시 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위생과 양생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교류하게 된다면 미래의 의학이 나아가야 할 길도 보이지 않을까?


덧. 일단 과학밸리에. 내가 과학밸리에 글을 올리게 될줄이야...

덧글

  • 漁夫 2010/01/31 11:29 # 답글

    핑백 감사합니다. 본문의 말씀에 대해서는 두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1. '합리'는 '누군가의 합리'가 아닙니다. '사실'과 '검증'으로 뒷받침 되는 편에게 우선권을 줄 뿐입니다. 제가 이 편 업계인도 아닌 상황에서 어느 편을 들 이유도 없습니다.

    2. '현대의학이 한의학에 대해 재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이 현대의학 때문에 자신을 재고해야 한다'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 체계는 한의학의 내용을 사실상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약 원료를 갖고 오는 것은 체계를 도입해 오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전통 의학 등에서 무슨 아이디어의 힌트를 얻을 수 있더라도 그것을 통합하는 측면에서는 다른 개념을 갖다 넣어야 할 필요가 없지요. 한계에 부딪힌 편은 현대의학이 아니라 한의학입니다.
  • Minerva 2010/01/31 13:40 #

    허락도 없이 핑백한 글에 대해서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1.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것이 '사실'이라는 믿음 자체에서 근대 권력이 출현합니다. 제 글을 약간 오해하신 듯 한데, 저는 한의학이나 근대서양의학 어떤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본다고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과 '검증'의 틀을 마련한 '제 3자'의 입장이 존재하며, 이 '제 3자'는 근대 권력의 문제와 뗄레야 뗄 수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카이 나오키의 <번역과 주체>에 보면, 특정 문화적 집단의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도 저도 아닌 제 3자의 공시적 관점에서 이를 지켜보아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제 3의 입장이란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지요. 저도 한의학자도 의학자도 아닌 그저 인문학도입니다만, 인문학도 입장에서는 그 검증의 틀 자체가 근대서양의학에 유리하게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이것도 조금 오해가 있으신데, 치료법이나 약재에 대한 내용을 언급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방면에서는 거의 완전한 문외한입니다. (물론 주로 이런 주장을 하는 인문학도들은 동의보감을 많이 읽긴 합니다. 서양 의학 서적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도 서양의학의 권력지향적 성격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단지 사고방식의 문제를 언급할 뿐입니다. '병소를 분리하여 치료한다'는 서양의학의 사고방식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역사적으로도 그리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근대 과학의 틀이 가져온 하나의 관점에서 사고된 '특이한' 방식입니다. 한의학은 그에 비해서는 역사적으로 의학이라는 관점이 취해왔던 개념 - 삶과 질병의 공존이라는 형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왔습니다. 현재 근대 과학의 가시성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흐름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근대 서양의학의 기초적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들은 거의 근대 서양의학이 추구해왔던 '사실'들을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부정수소외래를 주 텍스트로 들었습니다만, 사실 좀 더 강력한 예는 플라시보 효과겠지요. 이것은 근대 서양의학의 틀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위생이 아닌 양생의 영역인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서양의학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 Minerva 2010/01/31 13:47 #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근대 서양의학을 부정하거나 그 성과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근대 의학과 한의학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단지 그 존재평면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이 삶과 밀접하게 접촉해있는 양생술이라면, 근대의학은 질병으로부터 삶을 보호해내려는 위생술이지요. 그 각각의 한계는 이미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한의학이 근대 과학의 권력에 의해 밀려 사장될 위기에 처한 반면에(이는 아메리카 주술사 등의 다른 전통의학도 마찬가지겠지요) 근대 서양의학은 근대 권력의 강력한 호위속에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는 것이 차이점일뿐입니다. 그러나 최근 의료계 동향을 보면 이러한 한계를 서서히 인정하고 양생의 개념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지요. 부정수소외래, 플라시보효과, 안락사, 페인 클리닉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 의학계에는 아직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개념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도입된다면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댓글도 쓸데없이 길어졌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漁夫 2010/01/31 14:08 #

    '허락'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제 글을 인용하셨다는 것은 일단 제 글이 의미 있다고 보셨다는 것인데, 프로 글쟁이가 아닌 아마추어 입장으로서 감사를 드려야지요. ^^;;

    1. "인문학도 입장에서는 그 검증의 틀 자체가 근대서양의학에 유리하게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은 사실 자주 나옵니다(http://fischer.egloos.com/4296533#13069385 음울한어둠 님의 리플 기타). 그러면, 한의학에서 주장하는 '한의학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사실에 가깝다고 믿어야 할까요?
    검증 작업 자체는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돈은 좀 들지만요 ^^;;). 비슷한 병으로 진단하는 환자들에 대해 대조군을 설정하고 이중맹검 절차로 결과를 관찰하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더 그럴듯한 방법을 한의학 쪽에서 제안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여러 의사 선생님들 - 한정호 선생님도 포함하여 - 얘기도 "어느 편이건 환자에게 더 이로운 결과만 내놓는다면 얼마든지 수용하겠다"이지요.
    단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은 한의학 쪽의 비용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세금이 아니라요). 위 리플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현대의학은 한의학에게 빚지는 것이 사실상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의학의 주류 의견에 반하는 어떤 주장을 내놓는 경우, 그 주장을 내놓은 쪽에서 입증까지 해야 할 책임이 있겠지요.

    2. 1번에 대한 답변에서도 언급하신 내용에 대해서요... '사실'은 '믿음'이 아니며 그 자체는 권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 사실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는 '권위(authority)'가 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믿어 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고 밝혀질 경우 추락은 한 순간입니다. 황우석 case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근대 과학의 가시성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흐름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근대 서양의학의 기초적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드리자면, 정말 "어디 가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 진화생물학이나 기타 frontier에 있는 사람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 얘기를 꺼낸다면 아마 진지하게 응대를 못 받으시리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다룬 사람이 Allan Sokal입니다. 그의 '지적 사기'는 자신이 일으킨 소란에 대한 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진화생물학 쪽의 선두 주자는 Steven Pinker인데 'How the mind works'와 'Blank Slate'를 보시면 포스트모더니즘을 과학 쪽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명확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 Minerva 2010/01/31 19:41 #

    좋은 답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1.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견해차이가 좁혀지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2번에서 말씀하신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만, 사실이 권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위가 사실을 만든다는 주장은 미셸 푸코로부터 시작하여 호미 바바, 사카이 나오키에 이르는 최근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에서 이미 수차례 언급된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사실로 믿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로서 변환된 사례는 굳이 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명백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던 뉴턴 우주조차 아인슈타인 앞에 무너졌지요. '진실 인식'은 담론으로 보장되는 것이지 그것이 담론 밖에서 생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의학담론은 어디까지나 서양의학에 유리한 형태지요. 적절한 반례가 생각나진 않습니다만, 예를들어 질병의 진척 정도가 아닌 인간의 행복 증진도같은 것을 측정한다면 결론이 어떻게 나올까요? 현대 의학이 첨단의 기술을 사용해서 살려놓은 뇌사자들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가족의 행복도를 극단적으로 낮추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데이터로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측면입니다. "시행해서 -> 병이 나았다"는 인과적인 측면에서의 측정은 당연히 병소를 직접적으로 처치하는 서양의학쪽이 유리하겠지요.

    2. 진화생물학을 비롯한 과학쪽의 지식은 일천하여 뭐라 답변을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제이굴드 및 도킨스 정도의 책만 읽어봤을 뿐이라서 말씀해주시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할 수 밖에 없군요. 과학측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말씀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이 그만큼 신뢰성이 없었군요. 추천해주신 저자들의 책은 참고하겠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했던 현대 의학계의 여러 실험들 - 부정수소외래를 비롯한 -은 분명 '모던'에서의 과학의 한계를 과학계에서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냐, 정도의 의문은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양자역학이나 카오스 이론, 가이아 이론과 같은 새로운 관점에서의 이론이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조류가 분명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저는 제이굴드만 해도 진화생물학 계통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역시 공부가 더 필요한 부분인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 카루 2010/03/11 14:02 #

    어부 / 결국 중간에 세금 이야기를 꺼내시는 건 (돈없는) 한의학계가 스스로 알아서 (돈있는) 양방의학계와 똑같은 성과를 내야 인정해 주겠다는 거군요. 예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참 재미있군요 ^^ 뭐, 기대도 안합니다.
    한계에 부딪친 건 현대의학입니다. 한의학은 현재 양방의사들에 의하여 행동반경을 제한당하고 있을 뿐이고, 통계학 등을 접목하면 무슨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죠.
  • 漁夫 2010/01/31 20:48 # 답글

    견해 차이가 있다는 점이야 애초부터 알고 있으니까요 ^^;;

    1. 인문학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는 링컨의 말처럼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 편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많은 검증을 통과해 온 것이 아니면 어떤 것도 사람들의 의심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의학을 포함한 자연과학, 공학 쪽의 사람들은 치사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철저히 의심하고 들어갑니다. 저는 '이 치사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과는 달리 뉴튼 과학을 아인슈타인이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http://phys22797.egloos.com/2275191 (Alias님) 를 보시면 상황이 어떤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장기간 의료 치료를 받는 분들의 '행복도'가 그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법과 의료 체계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잘 안 나을 것 같다고 치료를 빨리 종결하는 가족들은 "더 치료하여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란 가책에 시달리지요. 확실한 것은 한의학에 비해 현대 의학이 '치료율이 얼마인지는 확실히 안다'는 점입니다. 한의학은 얼마나 낫는지도 잘 모르겠군요.

    2. 포스트 모더니즘 쪽의 얘기는 주류 과학계에서 현재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aradigm shift에 관한 얘기라면, 일부 과학 저자들은 '쿤은 여러 모로 해악이 크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1번에서 상대성이론과 뉴튼 역학 얘기를 했습니다만 어느 일정한 범위 내에서 수많은 검증을 제대로 통과한 이론이 '완전히 뻥이다'라 판명될 가능성은 zero에 가깝습니다. 뉴튼 역학에 대한 양자역학/상대성이론의 역할은 '보완'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만 기술해야 하는 범위 밖의 인간의 일상 생활에서 뉴튼 역학의 역할을 웅변해 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건축물들이지요. ^^;;
    그리고 진화론을 취미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이아 이론은 별로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굴드의 주장보다는 도킨스의 주장이 훨씬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적고 싶습니다.
  • Minerva 2010/02/01 00:32 #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잘 알고 적은 글이 아니라서 무리한 논지 전개가 많은데에도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카루 2010/03/11 13:59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댓글에서 좋은 것도 캐치해 가네요.
  • Minerva 2010/03/12 00:06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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