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학 들어갈때 (많은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가장 큰 로망을 가졌던 부분은 동아리였다. 동아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기 보다는, 고등학교때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동아리에서 할 수 있으리라 무작정 믿었기 때문이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기타였는데 인문대 동아리인 함성과 공대 클래식 기타 동아리인가?를 저울질 하다가 그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기타는 여전히 못배웠다) 1학년 1학기를 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보내고 농활과 연애와 세미나로 여름방학을 불태운 후에, 1학년 2학기에 결국 새터때 한 눈에 반했던 <다시 싸움을>을 배우겠다고 결정했다. 문예창작동아리 참에 들어간 이유는 그렇게 단순했다.
1. 무려 3대 꼼까지 역임하면서 참에서 정작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마임을 하나 짜기를 했나, 정기공연을 계획하기를 했나. 다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때의 나의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다. 마임은 짜본다고 집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였지만 맘에 드는 동작이라곤 나오지 않았고, 역량 부족의 핑계를 댔지만 정기공연을 추진하기에는 너무 게을렀다. 남아있던 선배들이 열심히 도와주고 수향과 성규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난 뭘 했는가. 군대 가기 전 학기, 반 후배 두 명을 참에 집어넣고는 활동을 거의 중지했다. 그걸로 알량한 의무감을 채웠지만 여전히, 군대에 가서도 사실 지울수 없는 죄책감에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군대에서 마임을 짜보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지만...
2. 동아리가 해소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아리 여건이 모두 안좋아졌다. 동아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대학에 몰아닥친 공동체 해소의 바람은 학생회 조직만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우리 동아리가 해소한다는 사실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죄책감을 안겨준다.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잘 했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까. 군대 다녀와서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면 더 좋았을까.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 이후의 동아리는 내가 활동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후배들은 살갑게 대해주었으나, 분위기가 그랬다. 이것도 단지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3.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다. 마임과 문예운동이 한창 주목받던 시기는 곧 적극적인 투쟁의 시기와 일치한다. 그들은 항상 최전선에 서서 투쟁을 이끄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이라고 해서, 학생운동이 거의 사멸해간다고 해서 문예운동이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9년의 사람들도 아직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예는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언어의 하나이며, 신체의 자유를 상징하는 가장 순수한 기표이다. 몸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존재의 본질은 아니라해도, 그것은 존재이기 때문에...여기 한 명의 몸치로서 난 신체의 자유를 외치고자 했고, 외쳤었고, 앞으로도 외치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문예창작동아리 참>이 가지는 의의였다.
4. 만약 이 글을 보는 동아리원이 있다면(여기 들어오는 동아리원은 두 명 뿐이지만 ㅋ 그나마 둘 다 나랑 활동시기가 안겹치는군...)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여러분이 아니면 저는 움직이지도 못한채, 그저 숨만 쉬고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참>은 우리를 떠나가지만, 내 '몸' 곁에 있었던 여러분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사실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 무려 3대 꼼까지 역임하면서 참에서 정작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마임을 하나 짜기를 했나, 정기공연을 계획하기를 했나. 다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때의 나의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다. 마임은 짜본다고 집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였지만 맘에 드는 동작이라곤 나오지 않았고, 역량 부족의 핑계를 댔지만 정기공연을 추진하기에는 너무 게을렀다. 남아있던 선배들이 열심히 도와주고 수향과 성규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난 뭘 했는가. 군대 가기 전 학기, 반 후배 두 명을 참에 집어넣고는 활동을 거의 중지했다. 그걸로 알량한 의무감을 채웠지만 여전히, 군대에 가서도 사실 지울수 없는 죄책감에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군대에서 마임을 짜보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지만...
2. 동아리가 해소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아리 여건이 모두 안좋아졌다. 동아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대학에 몰아닥친 공동체 해소의 바람은 학생회 조직만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우리 동아리가 해소한다는 사실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죄책감을 안겨준다.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잘 했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까. 군대 다녀와서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면 더 좋았을까.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 이후의 동아리는 내가 활동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후배들은 살갑게 대해주었으나, 분위기가 그랬다. 이것도 단지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3.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다. 마임과 문예운동이 한창 주목받던 시기는 곧 적극적인 투쟁의 시기와 일치한다. 그들은 항상 최전선에 서서 투쟁을 이끄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이라고 해서, 학생운동이 거의 사멸해간다고 해서 문예운동이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9년의 사람들도 아직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예는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언어의 하나이며, 신체의 자유를 상징하는 가장 순수한 기표이다. 몸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존재의 본질은 아니라해도, 그것은 존재이기 때문에...여기 한 명의 몸치로서 난 신체의 자유를 외치고자 했고, 외쳤었고, 앞으로도 외치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문예창작동아리 참>이 가지는 의의였다.
4. 만약 이 글을 보는 동아리원이 있다면(여기 들어오는 동아리원은 두 명 뿐이지만 ㅋ 그나마 둘 다 나랑 활동시기가 안겹치는군...)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여러분이 아니면 저는 움직이지도 못한채, 그저 숨만 쉬고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참>은 우리를 떠나가지만, 내 '몸' 곁에 있었던 여러분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사실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덧글
2009/09/08 00:1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Minerva 2009/09/08 23:11 #
네 반갑습니다 ㅎㅎ 누구신지 좀 궁금하네요^^;
식상한감자 2009/09/09 16:39 # 답글
저는 그렇고... 한 명은 누구? 아 생각났다...사귄 터전이 거기였는데 이제는 본령이 된 동아리는 잊어버리고 만듯... 역시 제 잘못이 크네요
Minerva 2009/09/09 23:50 #
니가 걔를 잊어버리면 어떻하냐 ㅋㅋㅋ
식상한감자 2009/09/09 23:51 #
사람은 잊어본 적이 없는데 참과 관계맺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연상이 안됐음...
nigh2 2009/09/10 22:33 # 답글
기타는 복학생의 로망
Minerva 2009/09/11 00:23 #
젠장
나인테인 2009/09/10 23:12 # 답글
심지어 제 쌍둥이형도 군에서 기타를 좀 배워 왔더군요ㅋ
Minerva 2009/09/11 00:23 #
젠장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