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erva.egloos.com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포토로그 마이가든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나 아테나의 신전 - 사유

0. 영결식이 치뤄지는 날, 어딘가 놀러갔다가 아침에 들어온 엄마가 영결식 장면을 TV로 보면서 "넌 왜 안갔냐?"라며 한 마디 핀잔을 날렸다. 그 며칠전에 엄마랑 보기 드문 정치적 설전을 벌인 이후라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 본적은 충청남도, 고향도 충청남도. 친정집은 꽤 오래된 아산 지주다. JP의 텃밭이었던 그 곳에서, 문민정부가 탄생하던 시절 엄마는 누구 찍었냐고 칭얼거리며 묻던 어린 나에게 "김대중 찍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며 입단속을 하였다. 그 이후 있던 세 번의 선거, 난 세 번 다 엄마와 있지 못했지만 엄마는 세 번 다 이회창을 찍었다. 아직까지 엄마는 굳건한 이회창 지지자다. 도덕과 자존심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1. 그런 우리 어머니 입장에서 김대중은 여전히 못난 대통령이었다. 어느날 아침밥을 먹던 때 "늙은이 살만큼 살았는데 뭐"라며 핀잔 섞인 말을 툭툭 던졌다. IMF 직후 우리집은 보증 담보로 집을 날렸고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다. 엄마는 경매인이 불쌍하다며 쥐어준 50만원을 들고 오래 살던 인천을 떠났다. 엄마와 나에게 김대중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별 생각없이 김대중이라는 사람의 대중적 이미지를 쉽게 받아들였던 반면에, 엄마는 독기섞인 눈길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시절에 IMF가 결국 극복되었고 경제 회생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내 말에 엄마는 그래봤자 서민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 영광인 '노벨 평화상'을 위해서 북한에 엄청난 돈을 퍼부었던 것이 아무래도 맘에 들지 않았나보다. 결국 그날 논쟁은 내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끝났지만 난 경제라는 것의 역설을 생각했다. 누구도 모든 사람의 경제를 살릴 순 없다. 그러나 누구가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내' 경제가.

2. 분명 누가 뭐라고 해도 김대중-노무현은 이명박이 그렇게 추구하나 결국에는 닿지 못할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다. 두 사람 모두 (논쟁이 있을수 있으나)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수용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수용하며 겉으로 보이는 경제 성장은 확실히 이명박보다는 훨씬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에서 열심히 선전하듯이 IMF는 김대중 정부 하에 2년만에 극복되었고 노무현 정부때 국민 총생산은 정점에 다다르며 펀드 붐을 일으켰다. 노무현이 말했듯이 "경제는 대통령의 공약이 아니다." 경제를 안 살리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은 없다. 사실 대통령이 결정하고 공약해야 하는 것은 "누구의 경제를 살리는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이 점에 있어서는 비판받을 지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3. 누군가에게 그의 시기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시기였다. '평화'라는 단어를 토대로 달성된 그의 위대함은 누구도 쉽게 깎아내릴 수 없다. 이명박이 삽질을 하겠다고 쓴다는 30조원의 1/30만을 가지고 그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평화의 바람을 몰고왔다. 외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그를 넬슨 만델라와 비교했다. 그를 수없이 괴롭혔던 신군부에게 그는 정치적 보복을 가하지 않았다. 전 장군님은 그의 시대를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그의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군대에서 구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50년의 역사 최초로 사형집행이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가 찾아왔다. 그는 그의 정치적 신념을 바꾸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4.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의 시기는 고통으로 점철된 시기였을수 있다. 한나라당에게 그는 '잃어버린 10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우리 어머니에게 그의 시대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눈물을 머금고' 추진했다는 M&A와 구조조정에 쓸려나간 사람들에게 그의 눈물은 보였을까? 수많은 고개숙인 아버지들에게 그는 가부장권력 상실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이 모든 것이 그의 탓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우리 어머니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를 표상하는 인물이다. 그런 모든 일들이 그가 있었던 시대에 있었고 그가 했던 선택에 영향받았다. 그는 우리시대 가장 커다란 프랙탈 중 하나이다.

5. 미래는 과거의 프랙탈이고 현재의 선택이다. 믿을 수 없을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믿을수 없을정도로 많은 선택을 거쳐, 그런 것들이 모두 쌓여 미래가 결정된다. 그 누구도 과거를 버릴 수 없다. '잃어버린 10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그의 위대함이 그의 평화 아래 고통받았던 서민들을 잊게해서는 안된다. 그 고통과 평가, 모두 시대의 표상인 그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요, 우리가 싸들고 떠나야 할 과거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Minerva.egloos.com/tb/4224882 [도움말]

덧글

  • 자유로픈 2009/09/02 19:06 # 답글

    그렇지, 누구의 경제를 '살리고자' 했는가, 혹은 누구의 경제를 '살렸는가'? 김대중에 대해 인물연구의 관점에서 접근하느냐 혹은 정치사나 사회문화사 같은 구조-관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평가의 방점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누구의 경제'라는 시각만은 견지해야겠지. 잘읽었음.
  • Minerva 2009/09/04 00:45 #

    음음 단순한 대상의 문제가 되어서는 또 안되겠지만, 어쨌든 김대중으로만 표상될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문제를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후후 고맙습니다.
덧글 입력 영역



부엉이 집 현판

"각오와 성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이미 네게는
갖추어져 있구나"
링크
vuenviaje님의 블로그
reinhard님의 블로그
선명의 블로그
시사IN 천기자의 블로그
시사IN 변진경 기자님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