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사실 포스터를 보나 제목으로 보나 같이 본 선배 말대로 영화가 <차태현표 코미디> 티를 팍팍 내고 있는건 사실이다. <엽기적인 그녀>로 시작해서 <첫사랑 사수궐기대회>, <복면달호>(복면달호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로 이어지는 차태현표 코미디는 <엽기적인 그녀>의 지나친 성공때문인지 어떤지 몰라도 차태현의 이미지를 고정시키며 그에게 안좋은 이미지만을 남겼다. 사실 그도 나름대로 스펙트럼이 다양한 연기자이며 연기자로서 '실력이 떨어진다'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베테랑인데 말이지...(아니 왜 장혁과 차태현이 같이 나왔던 그 드라마 <햇빛속으로>의 그 카리스마 넘치던 차태현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냐!) 어쨌든 처음 포스터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영.
1. 그런데 어느새 알음알음 400만명. 포스터와 제목이 그렇게 혹평받으면서 이렇게까지 성공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주위의 평을 믿고, 이제 작년이 되어버린 2008년 마지막날 여자친구의 병환(?)으로 소박맞은 기중옹과 함께 프리머스로. 아니 회원가입만하면 영화가 공짜라고?! 예상외의 선물도 함께. 역시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개인정보나 팔아야지.
2. 상당히 재미있었다. 역시 영화란 포스터에 낚이는 것보단 주변사람들의 평이 더 중요한 법. 그냥 자연스레 즐거운 코미디 영화인데, 사실 한국영화에 이런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코미디 영화가 적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것도 이해할만 하다. 그정도 서사, 그정도 포인트, 수준급의 연기력, 충분한 개그, 어울리는 음악, 약간 아쉬운 화면. 한창 잘 웃고 집중해서 보고 나면 "영화가 이정도는 돼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한국 코미디 영화가 수준이 낮아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조폭 코미디 이후에)
3. 이 영화에는 포인트가 있다. 글에 중심문장이 있듯이 2시간이 넘는 영화에도 핵심적인 장면과 중추적인 대사들이 영화 전체를 압축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때론 캐릭터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과속스캔들> 역시 내용상의 포인트들이 "아주 잘" 보인다. 그만큼 강조하고 있는데, 이해할만 하면서도 조금씩 당황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압축되는 포인트는 총 세 가지 정도.
"미혼모도 하고 싶은 거 많아요" - 황제인이 남현수에게
미혼모에 대한 환상, 또는 이미지로 불릴만한 것들이 있다. "아ㅡ 힘들겠다" "애키우느라 고생이 많네" "어쩌다가 그렇게 됐수"가 좀 동정적인 시선이고 악의를 가진쪽으로 가면 좀 심하게 나올때도 있겠지. 어쨌든 대부분의 미혼모에 대한 시선은 미혼모 그 자신에게보다는 아이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혼모는 아이를 가진순간 인간이 아니라 '어머니'가 되니까. 황재인의 저 대사는 그러한 일반적인 시선을 유쾌하게 꼬집는, 영화의 첫번째 포인트다. 나중에 나오는 "엄마는 불행하지 않았어" 등도 같은 위상을 가진 대사라 볼수 있겠다.
"내가 원한거 아니야" - 남현수가 황제인에게
현대식 가족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사. 내가 원한것이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부 일처제의 가족제도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계약관계가 아닌 인간관계를 상정하기가 참으로 힘들거든. "원하고 원하지 않음"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와 권리"만으로 구성되는 가족제도에서 남현수와 황재인같은 인물들은 갈 곳이 없다. 갈등이 최고조로 이른 부분에서 차태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튀어나오는 이 대사의 무게감은 그때까지의 영화를 완전하게 지배한다. 물론, 후반부는 다르지만.
"그런데...현수씨랑 사귀면 제가 할머니가 되는건가요?" - 유치원 원장(이름이 뭐더라;)이 남현수에게
전반기를 지배하는 대사가 저것이라면, 후반부를 정리하는 대사는 이거다. 결국에는 비정상가족을 구성하게 되는 "과속 3대"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저 멋지구리한 대사는 황우슬혜의 허스키한 목소리 덕분에 약간 개그스럽게 되었지만 참 사람냄새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란 칭호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할아버지, 할머니, 뭐 어떤가? 그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4. 장면은 조금씩 아쉽다. 염맨님 블로그(근황(2008년 12월 10일) - <과속 스캔들>과 관련 있거나 없는 단상들)에서 잘 지적하고 있으니(게다가 내가 뭐 지식이 있는것도 아니고) 자세한 말은 않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계속 등장하는 클리셰들이 좀 아쉬웠다. 예를 들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기 위해서 똑같은 장면을 배열하는 방식은 약간은 지지부진하기도 하고 지겨운 클리셰다. 그리고 마지막에 홍경민(!)이 등장해서 기자를 패는 장면과 기자들이 다 빠져나가는 장면도 클리셰에 가깝다. 사실 코미디 영화라는게 어느정도는 클리셰로 먹고 사는 거긴 하지만 참신한 사고방식을 가진 참신한 영화인데 좀 참신한 장면을 생각해봤으면 하는 상상도 해본다. 예를들어 위 링크에도 나온 라디오 대화장면이라던가 오케스트라의 등장 등은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좋은 장면들이었다.
5. 사실 나는 차태현이 그렇게 혹평받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이번영화에서는 나름대로 호평받고 있지만) 어떤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는 항상 즐거움이 따라다니며 영화를 장악할만한 포스를 내뿜진 못하지만 영화의 감칠맛을 충분히 더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대부분 평에서 박보영과 왕석현의 명연기에 묻히고 있긴 하지만, 그의 그 유쾌함이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박보영과 왕석현은 사실 이 영화를 띄운 주역들이니 할말이 없다. 박보영의 그 뚱한 표정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거 같다. 왕석현의 웃는 표정과 보스 포즈(...)의 괴리는 그 나이대의 연기자가 쉽게 해낼수 있는 것이 아닌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표정이 왔다갔다 하는것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 오랜만에, 정말 뛰어난 배우들을 발굴했다.
6. 지난 해를 참 즐겁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좋은 영화 접하기가 참 힘든데(귀찮아서) 12월에는 무려 공짜로 두 편이나 좋은 영화를 봤으니 좋은 일 아닌가. <북극의 연인들>도 그렇고 <과속스캔들>도, 사색보다는 좋은 서사작품들이라 더욱 그렇다. 영화보면서 머리쓰는건 이제 귀찮다(...) 어쨌든 과속스캔들은 추천작.








덧글
nigh2 2009/01/01 17:28 # 답글
재인 아니었나?
Minerva 2009/01/01 20:30 #
인터넷에는 제인으로 되어있음. 나도 재인인줄 알았는데
Reset04 2009/01/08 08:26 # 답글
심영이 이 영화를 본다면 땅을 치고 눈물을 흘릴텐데....
Minerva 2009/01/08 15:40 #
아이를 가질수가 없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