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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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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일지#2 - 교수법(1) : 현직교사들의 이야기 주전부리 - 일상사

1. 교생 실습에 들어가면, 최초 2일 정도는 교사의 마음가짐이나 공통 교수법, 수업계획서 작성법, 상담기법 등에 대한 기초적인(사실은 지루하기 그지없는)에 대해서 공통적인 강의를 듣고, 동시에 각 과목별 담당 교사가 하는 수업을 참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수업 참관을 하게 되고, 2주쯤 뒤에 직접 실습에 들어가는 편이니 상당히 많은 시간 교사의 수업을 듣게 되는 셈이다. 필자는 사범대 전문 부속 중학교에 실습을 나갔기에 다른 학교보다는 좀 더 빡센 일정을 받았고, 실제 교사의 수업을 1주일(사실은 3일)밖에 듣지 못한채로 바로 수업에 투입되었는데, 나중에 같이 갔던 친구들과도 공감하는 바였지만, 실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적었고, 교사의 교수법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교사에게 교수법은 가르치는 지식(교수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 대부분의 교육론 수업에서 교수법을 강조하고, 사범대학의 존속 이유로서 교수법의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학술-학문적으로는 모르지만 실제 교사에게는 상당히 설득력있는 의견으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2, 필자가 간 학교에서는 2명의 역사교사와 2명의 사회교사, 2명의 지리교사가 있었는데(참고로 중-고등과정에서 최소한 올해까지는 사회과로서 역사-사회-지리교육 전공이 통합되어있다. 실제 교직 시험이나 사범대학 교과에서는 분리되어있고,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분리하고 있지만 행정상으로는 3과는 아직 하나의 사회교과다. 실제로 중등학교에서는 역사+사회과목을 같은 사회로서 하나의 시험으로 같이 치고 있다) 그 중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3명, 역사과 교사 2명과 사회과 교사 1명이었다. 중학교 2학년 사회과목에서는 1학기동안 세계사를, 2학기부터 사회(정치였나?)를 가르치기 때문에 사회과 교사가 역사교육을 일부 맡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명의 역사 교사들은 각각의 특징을 잘 살리는 좋은 교수법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짧은 시간 일부나마 체험하면서 나름대로 교수법에 대한 사고를 키울수 있었다.

3. 일단, 2, 3학년 국사(2학년은 고대,중세사, 3학년은 근세,현대사)를 담당하시는 40대 후반의 선생님 한분은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많이 접했던 판서+교과서만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맨몸의 투사(?)였다. 이 방법의 장점은 일단 교사의 몸이 가볍다는 것과(...) '내러티브'라는 역사교육의 본령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교사의 역량과 교과서의 내러티브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그저 단순한 교과서 암송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대부분 완전 초보거나 초절정 고수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은데, 필자가 만났던 선생님은 초절정 고수에 속했다. 결국 이 교수법의 승부처는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지식을 암기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달려있는데, 이 선생님은 수업시 아이들의 장악부터 내러티브 구성, 그리고 중간중간 환기를 위한 유머코드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절정고수였다. 세 선생님의 수업 가운데 학생들의 집중도가 가장 높았고 및 피드백 비율도 상당히 높았으며, 수업 후 간단한 테스트에서도 가장 좋은 수업효율을 보여주었다. 내러티브를 잘 활용하는 역사 수업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는지 잘 보여주는 예였다. 이 선생님은 교생들을 맞아 주로 '아이들을 집중하게 하는 스킬'을 많이 전수해 주신 편이었다. 역시 절정고수다운 풍모랄까...

4. 30대 중반 정도의 3학년 국사와 2학년 세계사를 맡으신 역사 선생님은 필자의 담당선생님이셨는데, 교생들이 쉽게 채택하는 파워포인트+질문지 형태의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이었다. 교과서 활용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고, 대부분의 수업을 파워포인트 자료와 교사의 설명으로 진행하였다. 이 방법의 장점은 일단 고난도의 교수스킬이 없이도 쉽게 학생들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교과서에서 미진하거나 잘못 서술되어있는 부분을 지적하며 비교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교과서 이상의 내러티브를 쉽게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있고, 단점은 형식이 고정되어 단순 암기로 전락하기 쉽다는 점, 분절성이 강한 파워포인트의 특성상 내러티브를 살리기 쉽지 않다는 점, 교과서에서 벗어난 내러티브를 교과서 틀을 기반으로 하는 수업에 짜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이 있다. 필자가 만난 선생님은 교과서와 파워포인트 사이에서 비교적 균형을 잘 맞추시며 아이들의 집중을 잘 이끌어내셨지만 파워포인트와 질문지의 특성상 내러티브가 교과서 중심의 수업에 비해(물론 잘된 수업 말이다) 떨어지는 것은 어쩔수 없지 싶다. 피드백 비율은 높은 편이나 집중도는 약간 떨어지는 편. 내러티브가 적기 때문에 암기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수업에 잘 집중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점수나 사탕과 같은 부가적인 행동주의적 교수법을 이용하는데 효과나 이용빈도 면에서 나무랄 곳이 없다.

5. 마지막 선생님은 젊은, 30대 초반의 사회선생님인데, 의외로 세 분 중에서 가장 카리스마가 넘치고(...) 개인적으로 판단했을때는 교사의 개인적인 역량(교수법과 교수지식을 떠나서, 말그대로 수업을 장악하고 아이들은 통제하며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선천적인 능력)은 가장 뛰어났던 것 같다. 젊은 선생님 답게 파워포인트 + 질문지 + 교과서를 같이 활용하는데, 원래 사회 전공이신 선생님답과 역사보다는 사회쪽의 교수법에 더 가까운 질문+대답의 교수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내러티브 내에서 힌트를 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결론을 찾아내도로 유도하는 형태의 교수법을 사용하는데, 장점은 역사 교육의 또 하나의 본령인 '역사관 형성'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과 교사보다 학생들이 수업을 만들어감으로써 사고과정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있고, 단점으로는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이 없다면 수업이 길을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물론 이것은 단순한 단점으로는 볼 수 없으며 별도의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다양한 대답을 생산해낼 가능성이 높고 그 대답들의 가치가 모두 큰 사회쪽 수업에 비해,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으며 최종적으로는 그 대답을 이끌어내야하므로, 정답이 정해져있는 역사계열 수업에서는 토론식 수업이 예상외로 큰 힘을 발휘해내지 못한다는 점 등이 있을 수 있겠다. 특히 추후 교생들의 수업을 포스팅하며 별도로 언급하겠지만, 사회 계열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활동학습이 역사 교육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면이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고자 할때 분명 어긋나는 부분이 생기곤 했다. 이에 수업을 지켜보면서 역사 수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활동수업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이 선생님이 활용하시는 사회수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선생님들 중 피드백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집중도도 좋았다. 다만 일부 학생들이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경향이 있으며, 학습에서 뒤처지는 학생들은 수업 중 가장 집중력이 낮았다.

6. 이러한 세 선생님의 수업을 들음과 동시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른 과목의 수업도 두어과목 참관했다. 과학과 국어 수업을 참관했는데, 실험을 위주로 하는 과학교육의 방법론은 물론 받아들일 부분이 많았지만, 역사교육에서 활동수업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국어의 경우도 활동수업이 많은 편이고 특히 시와 시를 구성하는 주요 배경에 대한 해석을 학생들에게 직접 실천하도록 하는 것은, 역시 해석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측면에서도 반드시 검토해야 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7. 이와같이 각 과목별, 그리고 선생님별로 독특한 교수법과 실제 수업에서의 모습을 지켜보고 분석해보고 나니, 교생 실습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리...가 없잖아 -_-;; 어쨌든 필자가 맡아야 하는 수업시간은 3주동안 18시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교생실습 나간 역사과 교생들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아, 물론 필자가 나간 학교에서 국어교생들은 기본적으로 24시간 이상을 수업했으며, 필자는 목격하지 못했지만 작년 교생 중에서는 40시간 이상을 수업한 사람도 있었다 한다. 40시간이면 일반적인 교사가 3주간 수업하는 분량과 거의 같다.) 이것을 과연 어떻게 실제 수업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강용석, "루저녀", 그리고 한국사회의 '현실' 소주안주 - 세상사

강용석 단상 - leopard님
KBS 해설위원 "강용석 성희롱 발언은 말실수" - 미디어오늘

1. 올해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말실수"가 강용석 사건이라면, 작년 말을 뜨겁게 달궜던 대표적인 "말실수" 사건이 있다. 일명 "루저녀" 사건. 키가 180cm 이하인 사람들에게 '루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미수다의 "루저녀" 이 모양은 사람들 사이에서 강용석 못지 않게 회자되고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그 당시 분노를 금치 못했던 전국의 수많은 루저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리오넬 루저", "탐 크루저", "마틴 루저 킹" 등 패러디를 통해 '루저이지만 루저가 아닌 사람들'의 예시를 들며 그녀의 편협한 시각을 비웃었다. 그 중에서 "솔직히 맞는 말이잖아"라는 반응을 보여준 사람은, 없진 않았겠지만 눈에 띌 정도로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강용석 사건에서는 그 때는 보기도 힘들었던 "맞는 말이잖아"라는 반응이 흘러 넘치는 것일까?

2. 강용석이 말실수를 했고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한나라당 주제에 가카, 공쥬님, 게다가 삼성까지 디스하는 엄청난 배포에는 두 발 두 손 다 들정도다. 강용석이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의 찌질이라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일단 한나라당조차 제명조치를 통해서 강용석을 응징했고, 조중동(특히 중앙)이 집중포격하고 있으며, 이글루스에서도 다수의 네임드들이 이를 언급했으니. 여기까지는는 앞서 언급했던, 작년의 "루저녀"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그런데 그가 한 일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일단 아나운서 협회나 당시 자리에 있었던 대학생들은 모욕을 당했다는 의견이 상당수인 것 같다. 특히 아나운서 협회는 곧바로 강용석을 고소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 입사하고 활동하는 아나운서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들면 저 위의 KBS 해설위원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닌 말을 실수로 내뱉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자리가 그렇게 대학생들이 모여있고, 특히 아나운서 지망 여학생이 없었더라면, 다른 인원 다른 구성의 술자리였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꽤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맞긴 맞는 말이잖아" "틀린 것 없네"라는 반응이 이곳 저곳의 댓글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왜? "루저녀"가 언급했던 루저 발언과 강용석의 주옥같은(?) 말들이 어떤 층위의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온단 말인가?  

3. 그의 발언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저 그의 시각 자체가 성적 이분법에 극히 매몰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예를들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집값 차값" 발언을 보자. "남자는 (집값처럼) 가면 갈수록 올라가고, 여자는 (차값처럼) 가면 갈수록 떨어진다"는 비유는 극히 적절하지도 않을 뿐더러 굉장히 편협한 발언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듯이, 현실을 반영한 "사실"은 아니라는 거다. 이재용 삼성 전무야 가면 갈수록 가격이 올라가겠지. 근속년수 5년의 환경미화원이 5년 더 근무하면 가격이 올라갈까? 결국 남자중에서도,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떨어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는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실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저글링 러시하던 시절에 있었던 '고정관념'을 강용석 입맛대로 '현실인것처럼'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박근혜가, 김연아가(이건 좀 그런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강용석 자신보다 가치가 떨어질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복잡다양해서, 단순히 한 가지만 보고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초등학교 바른생활 시간에 나올만한 소리를 내가 지금 여기서 해야하는가?

아나운서 발언, 가카 디스 발언도 마찬가지다. 몇백명이나 되는 아나운서들 중에 강용석 말대로 "모든걸 다 줘서" 들어간 아나운서가 몇명이나 있을까? 나는 아나운서도 아니고 아나운서 관계자도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일이 몇백명 전부에서 일어났을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아나운서라는 직종 자체가 없어져야 하겠지. 그리고 강용석은 잘 모르겠지만, 강용석의 발언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 중에서 '아나운서의 뒷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을까? 그것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그런 '편견'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아나운서는 대부분 예쁘니까. 여자는 예쁜게 (유일한) 무기니까. 당연히 자기 상사에게 "다 주지" 않았겠어? 라는, 불쾌하지 그지없는 편견. 가카 디스를 볼까? 가카가 만약에 정말 천하에 둘도없는 색골이고 젊은 여자만 보면 하악하악대는 변태라도(죄송합니다, 가카! 코렁탕만은 제발...), 가카가 그 여학생에게 전화번호를 따지 않는 것이 영부인 때문만은 아닐거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 주변의 카메라와 시선, 그리고 그 여학생의 거절여부(...)까지 포함하여 주변의 수많은 영향력들이 가카를 자제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 아닌가?

4. 내가 지금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아닌 것 같다. 최소한 나는 이 건에 관해서는 내가 상식에 기반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강용석이 말하듯이 남녀관계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권력관계가 얼기설기 엮여 있으며, 그 중에서 남녀의 구분은 여러 변인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상당히 강력하긴 하지만, 솔직히 단독적 변인요소라고 보기는 힘들다. 차라리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돈이라고 했으면, 코웃음은 쳤겠지만 나도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값 차값같은 세계관은, 천박이 하늘을 찌르다못해 안드로메다에 닿을 기세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인척하는 일부 남성들(여성들도 있을수 있으나)의 현실인식에 불과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틀린말 아니네"라고 동의를 보내는 것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강용석과 같은 왜곡된 사회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현실"을 어느정도 어그러뜨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루저녀" 사건으로 다시 되돌아가보자. 아무도 그녀의 그 발언의 사실관계에 대해서 논쟁은 커녕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80cm 이하의 사람들이 (그녀보다, 그리고 180cm 이상의 위너 찌질이들보다) 잘 나가고 있는 현실이 눈 앞에 있기 때문이다. 키가 남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용석 발언에 대해서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에 동의를 표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인것처럼" 위장하여 상당수의 사람들(주로 남자겠지)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대한 개선의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5. 왜 그럴까? 당연히 개선시킬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는데, 하나는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여 그에 대한 개선을 포기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보통 '현실'에서 불리한 위치, 곧 여기에서는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될수 있는 생각이다. 둘째로, 그러한 인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일 경우이다. 키는 솔직히 클만큼 다 컸기 때문에 이제 180 넘기는 힘들다. 그러니 "루저녀"는 까야한다. 그런데 강용석 말대로라면, 성공만 하면 예쁜 여자는 딸려온다. 그러니 강용석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 '희망'에 기반한 왜곡된 시각이, 상당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강용석은 병신이지만, 말은 맞는 말이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닌가. 강용석이 병신이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 역시 병신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왜곡된 세계관이고, 결코 '현실'이 아니며, 우리가 극복하여 나아가야 할 잘못됨이다.

6. 물론 그의 발언은 현실의 '일면'을 반영하고 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의 말은 '현실'이 된다. 분명 여성은 비상식적인 논리와 외모적 차별에 의해서 남성보다 사회에서 불리한 점이 많으며, 일부 직종에서 여성의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이것은 일부 여성들이 "루저녀" 사건의 그녀처럼 남성을 키(+외모)로 평가하고 소비하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과 똑같은 층위의 사실이다. 그녀가 천박했듯이, 강용석도 천박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의 전부인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된다. 그와 "루저녀"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틀린 것 없다"는 당신이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오만이고, 미래에 찾아올 세계에 대한 포기나 다름없다. 강용석의 비틀린 세계관을 맘껏 비웃어주면서, 그가 말하는 비틀린 현실을 고쳐나가야 할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곽노현과 외고 아들 - 깔려면 곽노현을 까자

0. 유행이 한참 지난뒤에 써야 키배붙을 일이 없기 때문에...전투력이 약한 나로서는 키배가 두렵다.

1.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된 곽노현 당선자의 아들이 외고를 다닌다는 이유로 이글루스가 한창 시끄러웠다. 문제는 곽노현 당선자의 공약 중 하나가 외고 개혁(폐지도 아니다)이라는 것이었고 이에 많은 보수블로거 & 비로그인 키워들이 잔뜩 달려들어 득달같이 그를 까댔다. 물론 진보 성향의 블로거들은 그에게 실드를 쳐주려 애썼고...원래 메이저 블로그에 덧글을 달지 않는 것을 철칙...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하면 그럴려고 하고있는 나지만, 대표적 보수블로거이신 무명씨님의 블로그에 댓글도 한번 달았고...(물론 거기에는 달자마자 무섭게 반박댓글이 달렸다) 왜 이제와서야 이 이야기를 하냐면, 난 이 논쟁이 정말 하잘데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하냐면 하잘데기 없는 논쟁을 질질 끌고 있었던 보수-진보 블로거들이 적잖이 답답했기 때문에 한풀이 할 생각으로 쓴다.

2. 여러 글을 살펴본 결과 보수블로거들의 주 논지는 "외고에 간 아들이 있는 곽노현은 교육감을(최소한 외고개혁을 추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 그는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고, 그의 외고 개혁 공약은 최소한 이원희보다는 많은 지지를 얻은 '민주절차를 거친 정당한 공약'이다. 그를 깎아내릴 수 있는 '자격'의 논란은, 당선자 본인이 도덕적으로(또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문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때만이 제기 가능한 것이다. 자기 아들이 외고를 다닌다는 것이 이러한 상황에 속하는가? 그의 당선이나 직무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을때 승소가 가능할 것인가? 대체 아들이 외고를 다니는 죄는 무슨 죄로 소송을 걸어야 하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것은 애초에 논쟁거리조차 못되는 문제다.

3. 물론 이러한 자격론은 좌파에서 좀 더 많이 꺼내드는 칼이라 보수측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하 가카)의 군복무논란이다. 아, 솔직히 군복무 드립은 나도 개그로 자주 치고는 한다만. 그런데 그것은 개그로 머물러 있어야 정상이다. 가카가 군복무를 안해봐서 군사 문제에 대한 대처가 늦다고? 그럼 가카가 만약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을 했다면 날아오는 1번 어뢰라도 막을수 있었을까? '아니다'라는 대답이 정상이다.(혹시나해서 덧붙이지만 해군 병장 만기전역도 마찬가지다) 그럼 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육군 장군출신을 대통령으로 앉혀야겠네?(전장군님 만세) 물론 정부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이 어느정도 미진한 부분이 있었음은 사실이지만(나는 그래도 군의 ㅂㅅ같은 대응에 비하면 훌륭한 축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가카의 군복무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솔직히 이러한 자격론 드립은 대부분 좌파의 ㅂㅅ짓이다. 이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현명하신 보수블로거분들께서 좌파의 ㅂㅅ짓을 똑같이 따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왜 '니들이 먼저 했다'고 'ㅂㅅ짓이다'라고 욕하면서 굳이 똑같이 따라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다.

4. 까놓고 말해보자. 곽노현 아들이 외고를 안다녔으면 곽노현의 외고 개혁노선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을 것인가? 아니잖은가? 누군가 말했듯이. '아들 외고 떨어져서 열폭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 뻔하다. 어차피 반대할 거, 같잖은 자격론 서로 들먹이지 말고 그냥 정책을 까면 된다. 괜히 사회 적응 잘 해서 외고 잘 들어간 불쌍한 곽노현 아들 까지말고, 까고 싶으면 곽노현을 까라. 왜 곽노현 아들이 곽노현 아들이라는 이유로 외고에 들어갈 '선택의 자유'를 제한받아야 하는가. 선택의 자유는 특권화된 외고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강남아줌마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이제 자격없는 자격론은 그만 들먹이고, 그의 정책과 행보에 대해서 진지하게 비판해보자.

교생일지 #1 - 첫 만남, 조회 주전부리 - 일상사

※ 본 포스팅은 지난 5. 3 ~ 5. 28간 서울 사대부중에서 있었던 교생실습에 관련된 내용 및 소감을 정리하고자 시작하는 시리즈이다. 대략 7편 정도가 될 것이라 예상되며, '일지'라는 이름이지만 일기 형식보다는 주로 실습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나 교육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부분을 중심으로 소회를 푸는 형태가 될 것이다.(본래는 실습기간동안 일기를 써볼까 했지만 일기 자체를 이미 실습록이라는 형식으로 쓰고 있었는데다가 인터넷을 맘대로 활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떄문에...) 혹시라도 본인을 모르는 사람이 이 포스팅을 보게 될 경우의 참고사항으로, 필자는 현재 비사범대생(서양사학과)이고 교직이수를 신청했으며, 중학교 2학년 사회(세계사, 근대의 형성 ~ 명예혁명), 3학년 국사(붕당정치 ~ 흥선대원군의 개혁)을 수업하였다.

1. 사실 교생기간 제일 힘들었던 일을 글 시작하자마자 밝히자면, 당연히 일찍 (규칙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_- 원래 필자의 성격 자체가 규칙, 꾸준, 계획 등과 거리가 멀다보니 - 게다가 한학기 11학점 넣으며 맨날 늦잠자고 편히 다니다보니 -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해야한다는 사실은 정말 지옥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집을 나와 처음으로 동거 비스무레한 것을 하다보니 잠자리가 낮설어서 그랬는지 밤새 잠을 설쳐 사실상 거의 잠을 못잔 상태에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필자를 구원한 것은 학교에서 아침마다 운행하는 교생셔틀.(물론 유료) 교생셔틀 덕분에 간신히 지각은 면한채 출근에 성공하여 처음으로 실습에 나서게 되었다. 물론, 엄청나게 졸렸다.

2. 뭔가 복잡다양한 설명이 이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학생들과 대면을 하게 된 것은 운동장에서였다. 정말 백만년만의 단체 조회. 요즘 대부분 학교에서도 그냥 보통 방송조회로 대체한다던데...?! 그러나 역시 안해본 티가 팍팍 난다. 줄 맞추는데 수십분, 조용히 시키는데 수십분. 애국가, 교가 제창이 어색한 것은 물론, 수상식에서도 어리버리 왔다갔다. 요즘 조회를 안하긴 안하나 보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실제로 한달 동안 교생생활을 하면서 목격한 전체 조회는 오직 이것뿐이었다) 교생이 무려 100여명(정확하게 115명. 전교생이 1000명이 조금 안되는 걸로 알고 있으니 1/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인원이다. 사범대 부속학교이기에 가능한 수치다)이나 왔으니 예의 좀 차릴만도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교육사회 시간에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서 조회가 남아있는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도 대한민국뿐이죠. ......이건 군대식이에요. 운동장(연병장), 제식훈련, 아침조회(점호), 경례, 맞잖아요?"  괜히 병영국가가 아니다.

3. 이러한 모습은 굳이 조회뿐 아니라 학교 이곳 저곳에서 목격되는 상황이다. 학급에 들어가서 회장에게 인사를 시켜보면, "선생님께 경례" 가 반, "선생님께 인사"가 반이다.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이 아직 남아있고 수업에 들어갈때마다 담당 교사에게 인사를 하며(이는 사실 학생들을 주목시킨다는 실질적 의미가 크지만) 아침마다 선도부가 복장 및 두발 단속을 하며(특히 교생이 출근할때마다 인사를 하는데 이게 엄청난 압박이다;;) 주번(환경도우미로 이름은 바뀌었지만)이 매시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한다. 3년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었던 그 곳과 매우 비슷한 모습에 데자뷰가 들 지경이다. 군대 처음 갔을때 낮설면서도 익숙한 그 느낌이 괜히 들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4. 어쨌든 첫날 조회시간에 느낀 소회는 그러했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1930년대 이후로 지나치게 경직된 모습을 유지해왔고, 그것은 아주 소폭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물론 시대 흐름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변화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다(어설픈 조회, "경례"와 "인사"가 반반인 모습들)만, 그것을 통제하는 제도는 아직까지 그 모습 그대로 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교복에 넥타이를 맨다고 학교가 세련되어 가는 것일까? 이러한 낡은 제도는 언젠가 무너지겠지만 저절로 무너지기보다 누군가 의식있는 사람들이 무너뜨려 주기를 바라는 건 사치일까?


심상정 사퇴, 진보신당의 미래 소주안주 - 세상사

지못미 심상정 - 페이비언™

0. 심상정 사퇴 소식은 페이비언으로부터 어제 들었다. 어제까지 집 밖에서 남의 집에 빈대붙고 있었던 나는 어젯밤에 돌아와 오늘 아침에야 선거 공보물을 볼 수 있었다. 심상정 사퇴를 알게 된 후에 보는 심상정의 공보물은 차라리 장례식장에 붙어있는 생명보험 광고지만큼 처량했다. 김문수, 유시민 후보 모두가 책으로 공보물을 낸 사이에 끼어있는 단 한장, 한나라당 부천시의원 후보의 공보물보다 못한 그 한 장은 이제 진보정치의 꿈을 안은 채로 바람에 날려 잊혀지게 될 것이다. 무려 1000만명이 살고 있는 경기도의 총책임자인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가는 당이 공보물 하나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할 정도라니, 이러고서 그녀에게 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1.애초에 나온 순간부터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은 예상했었다. 이미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원내 제3당이라는 기반을 만들어냈던 당에서 나왔을때, 노회찬과 심상정도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단병호는 거의 활동을 접다시피했고 최순영은 나오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조직력은 대부분 NL의 것이었다. 당이 가진 자산은 오직 진보정치의 두 스타 뿐이었고 이나마 유지하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결국 총선에서 두 사람이 모두 당선에 실패하면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이 무엇을 할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지방선거를 준비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된다고 없던 조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낮았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당이 가진 자산은 두 스타밖에 없었다. 두 스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장 메이져판에서 당선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대로, 근 10여년간 진보정당을 가장 크게 갉아먹었던 '비지론', '사표론'이 다시 악몽처럼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 후보는 끝까지 견뎌낼 것을 약속했으나 결국 심상정이 먼저 링에서 튕겨져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2.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이러한 일이 이전부터 계속되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악몽이라는 것이다. 정책과 비전에 대한 정당한 비판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큰 정치적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국 정치계에서, 애초에 판에 낄 수 없는 세력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민주노동당은 그 사이에서 기적을 일으켰으나, 그것은 말그대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계속될 수 없다. 박성관 선생님은 "진보정치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대체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무엇인가 자문해보면 그것도 딱히 아닌 것 같다. 지방선거로 행사할 수 있는 4표 전부에 7번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보여줄 무대를 주지 않고 뭔가를 보여달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심상정은 그녀가 말한 "진보정치의 꿈"을 정말로 지켜나갈 수 있을까?

3. 이번 선거에서는 아마 유시민을 찍을 것 같다. 부천시장도 아마 민주당 김민수를 찍지 않을까 싶다. 도의원과 시의원은...아직 잘 모르겠다. 선택지는 없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다당제 사회라고 배우고 알고 있고 믿어왔는데, 정작 현실은 이러하지 않은가. 대체 MB와 반 MB 진영 사이에서의 투표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제는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정치가 이분법 프레임에서 벗어나 - 증오와 동지애의 연결고리를 끊고,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닌 진정한 '민주정치'로 거듭나기 전에는 진보정당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황무지에서 피어난 꽃은 아름답지만, 오직 그 뿐이다. 자신을 퍼뜨릴 수 없는 꽃은 아름답게 질 뿐이다.

넥센 히어로즈의 선전 이유? 소주안주 - 세상사

중학생 치어리더 김민주, "공부도, 응원도 열심히" - 매일경제


......그렇단다.
국내 최연소 치어리더라지만 얼굴은 상당히 성숙해보이는데...=-=
놀랐던 것 두 가지는,

1. 보통 치어리더 신체사항을 저렇게 공개하나?;; 170이라니 엄청난 키인데...

2. 역시 꼰대들이 없을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무려 학업시간까지 배려해주는 치어리더보다는 당신들이 열광하는 소녀시대쪽이 훨씬 학업에 덜 충실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대체 치어리더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그렇게 도덕적인 문제까지 걱정하시어들? ㅉㅉ

다른건 몰라도

아직도 감이 안오시는 분들을 위하여 - 아리아리랑님


1. 나는 실제 그녀가 토익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스펙을 쌓느라고 죽어라 인턴을 뛰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꼭 그런 사람들만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달인이랑 다를게 뭐가 있나. "물구나무 서서 라면 먹어봤어요? 안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그래서 아리아리랑님의 2번 주장에도 공감하기 힘들다. 그녀가 스펙 쌓느라 고생하지 않았더라도, 그녀 주변에는 얼마든지 그런 사람들이 널려 있었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사회인지교육론이라고 하던데.

2. 그러나 무엇보다 다른건 몰라도 1번 주장에서만은 논박을 하고 싶어서 트랙백을 걸었다.(이런 메이저 블로그에 트랙백 걸면 사람 많이 오니 사실 겁나지만) 아리아리랑님 말씀대로 대학은 자유로운 공간이고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그녀처럼 빡세게 운동을 할 수도 있는 일이고, 동아리 활동에 빠질수도 있고, 세미나도 맘껏 할 수 있고, 그냥 다른거 다 귀찮고 집에서 오덕질 해도 된다.

뒷일이 걱정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고딩들에게 저런 이야기하면 맞을지도 모른다. "수능? 니들이 보고 싶어서 보는거면서 왜 그러나 하하하." 직장인에게도 저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직장? 당신들이 다니고 싶어다니면서 뭔 불만이 그리많나. 다들 알아서 자유의지로 시험보고 직장 들어간거 아닌가?" 하지만 고딩과 직장인에게는 아무도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마 아리아리랑님도 못하실거 같은데. 그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것 같으면서 사실상 행동의 자유가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대학생들에게만 그런 자유의지가 보장된 것 처럼 이야기하는가? 대학생은 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어디 외계인 계급이라도 되는가?

대학생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조건에 목매인 계급이다. 그들은 고등학생처럼 수능 이후의 장및빛 미래를 꿈꾸지도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들은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올해 대학에 들어온 10학번 중 한 명은 이미 고시를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그들의 현실은 잔혹하고, 그들의 자유의지는 묶여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바꿀수 있는 현실은 오직 토익뿐이다. 이미 결정된 학벌도, 재산도, 부모도 아무것도 바꿀수 없는 상황에서 토익점수만이 그들이 바꿀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므로, 그들은 토익을 준비하고 인턴을 뛰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그들의 자유의지지만 동시에 자유의지가 아니다. 사회에 살아가는 개인으로써, 완벽한 자유의지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동아리 활동이 바로 모의고사 점수로 돌아오는 고등학생이나, 잠깐의 취미활동이 바로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는 직장인과는 달리 대학생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어느정도 유예기간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특권 계급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누군가는 20대 대학생을 모라토리움 계급이라고 부르나보다. 그러나 졸업이 닥쳐서 돌아오는 자신의 토익 성적표는 그 어떤 계급의 위협보다 냉엄한 현실적인 위기를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토익공부나 인턴활동을 하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자유 의지며, 그 외의 활동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끔찍한 거짓이다. 토익공부와 인턴활동은 자신의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선택한 것이며, 그 외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감수할 현실적 위기를 그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 만약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자유의지라면, 대한민국 40만 청년 실업자들은 모두 자신이 택해서 백수가 된 것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3. 아무리 부정해봤자 실업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녀의 자퇴는 바로 이것을 상징한다.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입장에서 그렇다. 매학기 500만원, 1년 1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면서, 거기에 토익을 준비하고 인턴을 뛰며, 어학연수까지 가야하는 모든 재정적 부담을 지면서,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취업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현재 현실에서 좀 요란하긴 했지만 그녀의 자퇴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퇴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좀 했다고 그렇게까지 깔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아리아리랑님은 그녀가 자퇴를 해도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자퇴를 한 이상 그녀는 고졸이다. 아리아리랑님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26세 여성이 대학교 3학년일때도 막장인데, 고졸 26세 여성이 대체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녀는 그런 부담을 스스로 지면서 자퇴라는 선택을 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결단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대학에 붙어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치며 나온 것이다.

자유는 홀로 오롯한 가치가 아니다. 자유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가치이며, 사회적으로 탄생한다. 대학생에게 자유를 허하지 않는 사회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대학생에게 자유로워지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모라토리움은 지불유예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4년뒤에 지불해야하는 계산서를 안겨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 학생들은 자신의 자유를, 시간을, 노력을 그 계산서를 지불하기 위해서 바치는 것이고.


보드게임과 연인, 그리고 커뮤니티 주전부리 - 일상사

0. 남들 하는 취미란 취미는 거의 다 갖고있는 사람이 본인인데, 그중에서도 주변에서 별로 보기 힘든 취미 중 하나가 보드게임이다. 보드게임이란게 사실 공간문제, 시간문제, 만만치 않은 가격, 그리고 무엇보다 적절한 사람이 모여야 즐길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높은 취미는 아닌데,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마지막 문제때문에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어쨌든 자폐적인 취미가 아니고 '사람'이 모여야 참 맛을 느낄수 있는 거니까. 자폐플을 하게되면 왠지 자신이 비참해진다는 점에서 더욱 단체성이 빛나는 취미다(...)

1. 그러나 가끔 보드게임 모임에 가거나 게시판에 가보면, 상당수의 매니아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쪽이 더 많긴 하다) 연인-또는 결혼한 후의 배우자의 문제를 걱정하곤 하다. 과연 내 취미를 인정해줄까, 라는 것이 적잖이 걱정되기도 하고, 연인 또는 배우자가 없는 솔로들은 이걸 인정해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 사실 쉽지 않은게 보드게임은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만큼 취향도 엄청 타는 편이고, 매니아들이 즐기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 2시간 이상의 플레이타임을 각오해야 하는데다가, 대부분의 매니아들이 그렇듯이 보드게임 덕후들도 자기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_-; 게다가 엄청난 가격, 상당한 부피로 인한 재정 및 공간 부담을 생각하면 배우자로서는 쉽게 허락해주기 힘든 부분이 있지. 여러가지로 취미생활치고는 상당히 독특한 점이 있는 것이다.

2. 하지만 보드게임에는 그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의 장점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집안에 처박혀 하악하악할 수 있는 다른 오덕스런 취미와는 다르게, 보드게임은 둘이서 즐길수 있는 취미라는 것.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서로의 존재에 고마워할 수 있는 그런 취미. 그래서 보드게임 덕후들이 항상 연인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 취미를 인정해줄만한 사람이 있다면, 같이 게임을 즐길수 있을텐데- 라는 것? 아 물론 상대방이 나의 음악 취향을 알아준다거나, 같이 PC방에 갈 수 있을만큼 게임을 좋아한다거나, 야구 경기를 보고 열띤 토론을 벌일수 있는 것도 좋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이 필요하다- 또는 내가 상대방에게 필요해진다- 는 느낌은 덕후스런 취미중에서는(...) 보드게임으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은 들었다. 결혼하셔서 부부끼리 보드게임을 즐기거나, 연인을 데리고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물론 그 모임의 솔로멤버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면 열폭하곤 한다 ㅋㅋㅋ) 같이 지내는 사람끼리 취미마저도 공유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 되어버리는 사회에서, 이렇게 커뮤니티성이 강요 또는 강제되는(?) 취미도 참 보기 드문 것이 아닌가.

3. 현재 세계적으로 보드게임이 가장 발전되고 또 대중화된 나라는 뭐니뭐니해도 독일인데, 개인이 즐길수 있는 스포츠를 학교과정에서 강제적으로(?) 익히게 하는 이 나라에서는 집에 10여개 정도의 보드게임을 쌓아놓고 쉬는날 가족끼리 즐기거나, 친구들이 놀러왔을때 간단한 다과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매우 보편화되어있다고 한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가장 지역 커뮤니티성이 강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데, 나는 거기에 보드게임의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판치고, 각자의 생활이 파편화되고, 온라인 인간관계가 점점 대중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커뮤니티성 강하고 아날로그적인, 시대에 역행하는 취미가 하나쯤 남아있는 것도 좋지 않은가?

[번역 시리즈 1] 의역과 직역, 아슬아슬한 저공비행에서 맥주안주 - 역사

0. 최근 정식 작업이라고 할것까지는 못되지만 책을 두 권 번역하고 있는데, 하나는 전공서적이고 하나는 내 전공과는 좀 떨어져있는 계열의 "메이지 시대의 번안"에 관련된 책이다. 두 가지를 같이 번역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기 마련. 아무래도 전공서적쪽은 쉽다. 물론 이쪽의 영어가 더 쉬운 탓도 있다만(원 저자가 이탈리아 사람이라...)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내용이 있으니까, 단어를 찾는다던가 문장 구성을 해체할 때 기존 지식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영어 문장 구성이랑 지식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영어도 결국 언어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있는 언어의 특성상, 관련 지식을 알고 있으면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자연스럽게 짚어낼 수 있고, 이는 곧 빠른 이해와 문장 구성의 재조직으로 이어진다. 내 전공이랑은 하등 상관없는데다가 오히려 약한 쪽에 가까운 문학 작품을 다루는 후자의 경우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린다. 그런데, 완성된 번역을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후자의 번역이 훨씬 좋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체 왜 그럴까?

1. 현재 물의 환경사에 대한 책을 번역하고 있는 대학원 선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전공서적을 번역하는 경우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공을 상당히 들이는 경우가 많다. 독자 제현(...응?)들에게 퀴즈 하나만 내 보자. 여러분이 영어 서적을 읽다가 ...

unseen 'invisible hand'

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unseen과 invisible은 사실상 한글로 번역했을때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다. 그렇다면 굳이 왜 쓴 것일까? invisible hand란 단어는 거의 관용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의 성격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unseen이란 단어를 붙여서 강조해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번역자에게는 꽤 난감한 일이 된다.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학술번역에서는 위의 unseen이란 단어를 무슨일이 있어도 처리한다. 다만 철칙인 동어반복 금지만은 철저히 지켜서. 예를 들어 "불가시적인 '보이지않는 손'" 뭐 이런식이다. 학술서적 번역에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살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술번역이 아닌 경우 - 특히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적이거나 아동을 위한 책일 경우 이해하기 쉽도록 unseen이라는 단어를 아예 삭제해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번역이 될 수도 있다. <번역의 탄생>의 저자이자 20년이상 각종 서적을 번역해온 전문 번역가인 이희재 선생의 경우 이러한 과감한 삭제를 상당히 즐겨하는 편이며 때에 따라서는 문장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과감한 의역때문에, 이희재 선생은 번역계에서는 상당히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다고. 그러면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 등 굵직굵직한 학술서적들을 번역한 것을 보면 꽤나 인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2. 직역과 의역, 이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최근에 들어와서만 강조된 것은 아니다. 서양 서적에 대한 번역이 엄청나게 이루어지던 근대 개화기 시대부터 직역과 의역 사이의 알력은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특히 막부시대에 이미 번서화해어용이라는 부서를 설립해서 난학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이후에 이를 독립시켜 번서조소라 불리는 서양 연구 전문기관을 설치해서 서양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던 메이지 시대 일본은 의역과 직역 사이의 갈등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난감했던 것은 역시 "새로 들어온 문물"에 대응하는 번역어의 문제였다. "오렌지"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체 "오렌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메이지 초기 일본, 그리고 근대 개화기 한국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첫번째는 이를 동형의 익숙한 개념으로 대응시키는 것이다. "오렌지"를 "귤"로 번역한 것이다. 지금은 일반명사화된 "햄스터"란 동물을 메이지 일본에서는 "조선 큰 쥐" 또는 "비단쥐" 등으로 번역했다. 일본의 쥐보다 조선의 쥐가 훨씬 컸기 때문에, 기존에 일본에 존재하던 쥐보다 훨씬 컸던 햄스터를 조선의 쥐와 비교한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모양의 다른 개념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당연히도 글 전체의 변형을 불렀다.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등의 수많은 서양 문학작품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번안'되었다. 초기 메이지 시대, 문학 번역에서 '번안'은 법칙이었다.
두 번째로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표의문자인 한자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일본에서는 이러한 한자의 뜻을 서양의 개념과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했다. 사회, 민족, 국가, 자유, 민주주의 등의 새로운 개념이 광범위하게 탄생했다. 이는 곧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에 의해 한반도로 그대로 전해졌다. 밀, 베네, 헤겔 등 서양의 유력 철학자들의 서적들이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일본에 상륙했다. 이전부터 네덜란드를 통해 받아들인 서양의 주요 개념어들을 연구하고 일본 국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번서조소는 과감한 개념어의 확충과 서양의 개념을 그대로 번역하는 공격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번서조소를 통해서 수많은 철학서적과 의학, 외교문헌, 과학서적들이 대량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은 대부분 직역의 룰을 따랐다.

3. 번안과 직역의 틈바구니에서 생겨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일본'과 '서양'의 정체성이었다. 사카이 나오키는 이를 "쌍형상화 도식"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번안은 다른 무엇보다 '일본적인 것'을 일본인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j. 스캇 밀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시간이 지난 후, 일본의 독자들이 외국의 문학적 형식을 읽어내는데 익숙해졌기때문에 번안은 직역에 의해 그 위치를 빼앗겼지만, 그 몇십년동안 다양하고 복잡한 일본의 전통적 예술감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 당시의) 문학은 정확하게 (서양의 문학과) 대응할수 없는, 그리고 종종 (다양하게) 변형되는 일본성의 구체화를 바로 번안에서 찾아냈다." 비교와 대조는 상대방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서양의 것을 내부의 개념과 하나하나 대응해가면서. 일본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구체화하여 '일본성'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직역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서양적인 무언가'를 일본인에게 전달했다. 이것은 굳이 일본뿐아니라 조선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이전부터 서양 문화에 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고,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유학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던 일본에서 이러한 과정이 훨씬 구체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4. '적극적인 의역'을 이상적인 번역으로 강조하는 이희재 선생은 이러한 일본의 예를 들면서, 출발어(Source language, 번역 작품의 원어를 의미함)와 도착어(target language, 작품이 번역되는 언어를 의미함)의 개념을 다시한번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원어의 문장구조를 아무리 잘 살려봐도, 도착어에 도달했을때 이미 그 언어는 다른 말이 된다. 이희재 선생은 원어를 아무런 고려없이 그 의미만을 번역하는 것이 오히려 원어의 뉘앙스와 세부적인 의미를 죽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어가 담고 있는 세세한 뉘앙스는 그에 걸맞는 도착어의 말을 찾아냄으로써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출발어와 도착어가 서로 대응될때만이 서로의 존재를 명확하게 확인할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상호간의 명확한 위치가 규정되지 않는 번역은 결코 충실한 번역이라 부를 수 없다. 이희재 선생은 번역을 통해 외국어와 대응하는 우리의 토박이말을 다시 발굴해나가야 하며, 그것이 오히려 상호간에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5.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전공서적과 비전공서적을 동시에 번역하는데, 대체 왜 비전공서적의 번역이 전공서적보다 훨씬 좋은 방향으로 나오는 것일까? 전공서적의 경우, 내가 다른 책에 비해서는 '출발어'를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내 입장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도착어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그 언어 자체로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비전공서적의 경우 나는 출발어와 도착어를 거의 비슷한 비중에 놓고 비교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둘 사이의 동시적 대응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서의 적절한 대응어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의미다. 비행으로 따진다면, 전자는 하늘이 훨씬 익숙해서 하늘길로만 비행이 가능하기 떄문에 고공비행을 선택하는 비행사가 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땅과 하늘을 비교해가며 가지 않으면 그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으므로 애매한 지점에서 저공비행을 하는 비행사가 되는 것이다.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 우리는 결국 비행을 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닿아야 할 비행장은 최종적으로 대지에 있다는 것이다.

night flying - 한국식 팝-락의 이정표 막걸리안주 - 문화생활

0. 2006년, 탑골공원 뒤에 자리잡고 있던 원남동 한 구석의 어떤 공간에서였다. 당시 휴학하고 별로 하릴없이 잡다한 일을 이것저것 하고 있던 나는 그 곳 카페에 앉아서 넘치도록 꽃혀있는 여러 CD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왠 여자가 우주공간같은 곳에서 휘적휘적 걷고 있는 듯한 그림을 가지고 있던 CD가 한 장 있었다. 그 CD를 돌리면 가장 먼저 흘러나오는 첫 번째 트랙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한 맛을 주는 어쿠스틱한 기타와 왠지모를 구수한 맛(?)의 보컬. 일본식 기타-팝의 대표주자라는 스윙잉 팝시클(Swinging popsicle)과 4집 첫 번째 트랙인 "I just wanna kiss you"를 만나게 된 사연이다.

1. 타루의 앨범을 보기 전까지 스윙잉 팝시클이 그렇게 유명한 그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다면 또 아는 사람이 많은 그룹이긴 하지만 일단 내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고, 국내에 퍼져있는 일본 음악의 주력은 아무로 나미에와 같은 대중적 팝이 아니라면 비주얼 락이나 시부야 K같은 종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윙잉 팝시클같은 고전적 팝-락을 주력으로 삼는(이 친구들도 시부야 출신이긴 하지만) 친구들은 아무래도 주목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루 앨범에 보니 스윙잉 팝시클이 프로듀스를 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더라. 아예 앨범에 With swinging popsicle이라고 새겨놀 정도니. 타루야 원래 주목하던 가수였고, 스윙잉 팝시클이 더해졌으니 사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었다. 안그래도, 스윙잉 팝시클과 가장 매치되는 국내 가수라면 타루를 꼽고있던 차였으니.

2. 프로듀스를 거의 전적으로 맡았으니 당연하겠지만, 타루의 첫 앨범은 스윙잉 팝시클의 느낌을 그대로 닮았다. 인트로부터 그렇다. 스윙잉 팝시클 4집 [transit]의 첫 트랙 "I just wanna kiss you", 5집 [go on]의 첫 트랙 "rainbound"가 그랬듯이, 타루 1집의 첫 트랙 "night flying"도 인트로치고는 엄청나게 강력한 곡이다. 음악 자체가 강력하다기보다는 느낌이 독특해서 한번 익숙해져버리면 뒷 곡들이 잘 들리지 않는달까. 거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앨범의 다른 곡들이 색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것까지 고려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게다가 CD를 사기보다 MP3이 보편화되어있는 요즘 시대에) 어쨌든 그렇다. 그리고 night flying 노래 자체도 스윙잉 팝시클의 기타소리를 상당히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곡의 구성, 음성, 높지도 낮지도 않는 보컬의 목소리까지, 2번트랙 세탁기, 6번트랙 Just go, 7번트랙 쥐色 귀, 녹色 눈 등 세세한 부분에서까지 스윙잉 팝시클의 느낌이 있는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냥 들으면 마치 그들의 새 앨범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래서 앨범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고평가를 하고 싶을 정도로 음악은 좋다.

3.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전 미니앨범의 일렉트릭한 느낌도 좋아했었기에, 타루 고유의 느낌이 상당히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예 새 버전으로 다시 짜버린 Yesterday가 이전의 타루와 새 앨범의 타루를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할수 있는 곡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전 앨범에서 Yesterday가 갖고있던 뭔가 체념한듯 하면서도 달달한 느낌의 무언가가 새 앨범에서 리마스터링-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곡이 되면서 싹 사라져버렸다. 쥐色 귀, 녹色 눈같은 곡도 좋은 곡이긴하지만, 뭔가 균형이 무너졌달까. 팝과 락 사이에서 괜찮은 균형을 지키고 있던 타루의 음악이 스윙잉 팝시클이 참여하면서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팝의 느낌으로 휘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에이브릴 라빈이 2집에서 락쪽으로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그 고유의 매력을 상당부분 잃어버린 것과 대조적이면서 일치한다.

4. 뭐 어차피 타루 노래들은 팝의 느낌을 풍기던 곡들이 많았으니(Miss you도 그렇고) 그런 것을 가지고 까기엔 상당히 좋은 앨범이다. 앨범 마지막 트랙인 시간의 날개는 이전 앨범에서의 타루 음악과 목소리가 잘 살아있는 곡이다. 아직은 발전할 여지가 많은 뮤지션이고 미네코보다는 훨씬 발랄한 느낌이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는 타루이므로 스윙잉 팝시클과의 이번 경험을 잘 받아들인다면 다음 앨범에서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가지고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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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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